나하로 떠나는 유코상, 노지마상과 나고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간 물건을 갖고 다시 나하로 돌아가는 나까지.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 체크아웃할 준비를 했다.
유이네가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기로 해서 유이네 차에 탄 뒤 사키짱, 나라짱과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슬프고 아쉬웠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만나면 좋을 것 같다.
정류장에 도착해 유이네와도 작별인사를 한 뒤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가 다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놀라며 웃으셨다.
나하가는 버스를 탄 뒤 유코상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유코상이 입고있던 자켓을 벗었다. 그런데 웃긴 건 안에 비키니를 입고있었다. 숙소 도착하면 바로 수영하기 위해 비키니를 입고 왔다며 그 상태로 버스 안에서 열심히 선크림을 발라댔다. 그걸 보고 내가 엄청 웃었는데 마침 앞자리에 타고 있던 노지마상이 내 웃음소리에 뒤돌아봤다가 깜짝 놀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ㅋㅋㅋㅋㅋㅋㅋ근데 그 반응속도가 진짜 엄청났다. 그걸 보고 난 또 빵 터졌지만 노지마상이 민망해할까봐 숨죽여 웃었다.
나고에 먼저 도착해 유코상, 노지마상과 인사를 나누고 그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 이어폰을 찾으러 갔다. 그때 카우보이 모자 쓰고있는 미국놈 앨런을 마주쳤지만 인사하지않고 그냥 돌아갔다.
나고에서 나하가는 길이 꽤 험난했다. 오키나와 처음 도착한 날 급 센치해져서 마지막날은 국제거리와 조금 떨어진 호텔을 예약했는데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도보 30분이나 걸리길래 중간에 내려 시내버스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시내버스를 환승하기 위해 센터 어쩌고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일단 인터넷에선 3번 버스를 타면 된다길래 3번 버스 기사에서 여기 가나요?하며 정류장 이름을 보여줬는데(한자라 읽는 법을 몰랐음) 버스 기사가 노! 백! 크로스 크로스! 하면서 건너편으로 가라는 손짓을 하길래 나도 모르게 오케이...하고 내려왔다.
이젠 대화가 필요한 일이 아니면 대충 일본어 못 하는 척 하기로 했다. 그게 훨씬 편하고 빠름.
버스 기사가 말 한대로 반대편 정류장으로 건너가 버스를 기다리는데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아니 그냥 버스란 것 자체가 아예 안 왔다. 처음엔 조금만 기다리자..하며 벤치에 앉아서 멍 때리는데 근처에서 마라톤 연습하는 아저씨를 네 번이나 봤음에도 버스가 전혀 안 오길래 그냥 안전하게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걷기로 결정했다. 젠장 처음부터 그렇게 할 걸.
나하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숙소가 있는 쪽으로 걸었는데 생각보단 오래 안 걸렸다. 한 20분?
체크인 시간은 네 시인데 나하에는 한 시인가 두 시정도에 도착해서 일단 숙소에다 짐을 맡긴 뒤 국제거리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다. 일단 그 전날 나키진에서 먼저 체크아웃한 울산 시스터가 내 쪼리를 자기 걸로 착각해 가져가는 바람에 국제거리에서 만나 신발을 바꿔야만 했다.
그렇게 땀에 쩐 배낭을 맨 채 숙소에 도착했는데 음 시발?클로즈라는 팻말이 걸려있고 안에 불도 꺼져있었다. 아예 호텔 운영을 체크인 시간에 맞춰 시작하는 경우는 또 처음봐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이라도 보내야하나 생각했지만 그 근처는 카페는 고사하고 식당도 없었다.
어쩌지 고민하다 일단 유리문을 통해 숙소 안 쪽을 둘러봤는데 데스크에 사람이 앉아있는 걸 발견했고 똑똑 노크했다. 남자를 나를 발견하고 퉁명스럽게 쳐다 본 뒤 문을 열었다. 내가 오늘 체크인 할 사람인데 먼저 가방만 맡겨둘 수 있냐고 했더니 되게 뚱한 표정으로 '체크인 시간은 네 시인데요..'라고 했다. 아니 누가 모르냐?하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참고 '네 그런데 짐 맡기는 록커같은 건 없어요?' 물으니 또 뚱한 표정으로 무슨 짐이냐고 물었다.
내가 개 뚱뚱한 배낭을 보여주며 가방이요.하자 한참 생각하더니 '원래 안 되는데 오늘만 맡기세요.' 했다.
뭔가 그 상황에 내가 고마워해야하는 건지 불만스러워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짐 보관이 안 되는 숙소는 또 처음 봐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고맙다며 그 남자에게 부랴부랴 배낭을 건낸 뒤 힙색만 챙겨 나왔다.
울산 시스터즈를 돈키호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다행히 내가 사진 보내준다고 카톡 아이디를 받아놓은 터라 연락할 수 있었다) 손톱깎기와 마그넷등을 골랐는데 그때 마침 울산 시스터가 도착해 선 채로 몇 분 떠들다 헤어졌다.
근데 그 과정에서 내가 자연스럽게 물건을 내 가방 안에 집어넣는 바람에 순간 도둑이 될 뻔했다. 다행히 가게에서 나가려다 순간 깜짝 놀라 다시 돌아왔지만 그냥 나가다 걸렸으면 아주 귀찮아질 뻔했다.
북적이는 국제거리는 돌아다니기 싫어서 골목골목으로 들어가 멋진 가게들을 구경하고 타코라이스와 망고 빙수도 먹었다. 정말 신기한 게 단 국제거리와 몇 미터, 몇 백 미터 거리인데도 골목은 엄청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마치 홍대 커피프린스 쪽엔 아무도 없는데 걷고싶은 거리에만 인간들이 버글거리는 걸 보는 기분이랄까? 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아주 피부로 와 닿았다.
밥 먹고 선물을 뭘 사냐 고민하면서 엄청 돌아다니다 너무 힘들어서 일단 숙소에 돌아가 체크인을 했다. 그땐 그 퉁명스러운 남자가 아닌 다른 여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는데 너무 친절해서 호텔의 안 좋았던 첫인상이 사라졌다.
사실 첫날 내가 쓸데없이 센치해지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고에서 여러 좋은 사람들과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서 마지막 날 혼자 자는 게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깨끗하고 넓은 호텔방에 도착하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밤에는 뜨거운 물로 목욕한 뒤 편의점에서 사 온 술과 롤케익과 푸딩과 과자 젤리 주스 삼각김밥 따위를 엄청 사서 호텔방에 풀어놓고 돼지처럼 먹었다. 에어컨 빵빵한 방에서 나 티비 보고 먹고싶은 거 먹으니 아주 신이 났다.
마침 티비에서 요후카시를 하길래 그거 보면서 아 짐 싸야되는데...라고 생각하고 잠깐 눈을 감았는데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커다랗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니 몸이 너무 편안했는지 진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다행히 알람을 맞춰놓고 자서 늦잠을 자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티비 틀어놓은 채 룰루랄라 짐을 꾸리고 공항 갈 준비를 했다.
체크아웃 시간은 10시이고 비행기 시간은 1시 20분이라 근처에서 밥이라도 먹고 갈까 고민하다 마땅한 밥집이 없어서 그냥 공항으로 갔다. 나는 이럴때라도 딱 맞춰 가려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이날 공항에 두시간 40분 가까이 일찍 도착해놓고 국제선 국내선 방향을 되게 헤맸는데 밥 먹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내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가 조금 오더니 서울 온 이후로 오키나와 날씨는 계속 흐림 상태에 있다.
역시 난 해의 요정인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