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악몽같던 사고가 일어나고 아주 분주한 일상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먼저 병원에 가 치료를 받던 챠우를 데려와 룸메들과 밥을 먹었고 쓸데없는 말은 최대한 아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혼란 그 자체였던 사고 당일날보단 써니의 농담질에 챠우가 웃기도하고 분위기가 썩 풀려있었단 거였다. 다만 그것의 전제는 윅터였다. 사고의 원인은 전적으로 윅터의 운전 미숙에 있었고, 고장난 바이크 수리비와 같이 피해를 입은 독일 남성들의 치료비는 물론 챠우의 치료비를 모두 보상하겠다고 말 했기 때문이었다. 이 날 병원가기 전 숙소 풀장에서 써니, 윅터, 거기서 만난 한국 남자와 대충 아침을 먹었는데, 윅터는 정말 정신이 나가있었다. 같은 말을 반복했고, 산만했고, 눈빛에 촛점이 없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 가장 안쓰러운 사람은 챠우였지만, 동시에 윅터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도 걱정이 됐다.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 받고 같이 점심 먹기로 한 윅터는 그 날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씹을 수 없는 챠우를 위해 죽과 부드러운 과자를 조달해주고 숙소에 돌아왔더니 뉴페이스가 있었다. 그 놈 이름은 스펜서. 호주에서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하고 온 애였다. 걔는 반창고가 덕지덕지붙은 챠우 얼굴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고, 우린 어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랬더니 걘 갑자기 돌변해 멍청한 미국놈들!!!!!!하고 분노했다. 자긴 미국인이 너무너무 싫고 넌 멍청한 미국놈의 죄없는 희생양이 된 것이다, 라며 열을 올리고 챠우는 그 애도 괴로울 것이라며 윅터를 두둔했다. 거기에 스펜서는 더 분노하며 화를 냈다. 그러더니 챠우에게 그럼 밥은 어떻게 먹냐고 물었고 챠우가 빨대로 죽을 빨아먹거나 음료만 마실 수 있다 했더니 푸하하ㅘㅘㅘㅏㅏㅏㅗㅘ하ㅗ!!!!!!!하고 엄청 빵 터졌다.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래놓고선 웃어서 미안하다고 웃으며 사과했다. 근데 우리도 웃겨서 같이 웃었다. 슬슬 저녁이 될 즈음 스펜서를 끼고 근처 선셋 플레이스에 해 지는 것을 보러갔다. 거기서도 스펜서는 낙엽을 손으로 부수며 파괴할거야!!!!!미국놈들 처럼!!!!!이라고 외쳐댔다. 또라이짓을 너무 많이 했지만 그래도 챠우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해결해주려 하는 착한애였다.
챠우는 이틀내내 나와 친구가 계속 자기 간호한다고 붙어다닌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밖에 나가 구경 좀 하고 오라고 권유했고, 낮에 풀장에서 만났던 한국 남자와 연락해 나이트 마켓에 갔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이스라엘 남자와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걘 내가 빠이 오던 날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놈이었다. 얘랑은 나중에 모조에서 또 마주쳐서 같이 맥주 마시고 돈크라이바에서 한 잔 더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니가 맘에 들어서 말 걸었다며 개수작을 부리길래 미안한데 난 그 말을 너 아닌 남자들에게도 매일 듣는다며 철벽을 쳤다. 물론 구라였다. 내가 피곤해서 숙소에 돌아가겠다 했더니 그놈이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 했고 숙소 돌아가는 길에 은근슬쩍 안아도 되겠냐 지랄떨어서 꺼지라 한 뒤 얼른 바이바이했다.
그리고 그 놈과 헤어지기 전 술집 앞에서 우연히 윅터와 마주쳤는데 날 보자마자 살벌한 눈빛으로 챠우 어딨냐고 따져댔다. 숙소에서 쉬고있으니 걱정말라하고 떠나보냈지만 왠지 그 이후로 좋지않은 느낌이 들었고, 결국 나의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걘 그날밤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