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27
방을 연장 못 해서 근처 다른 호스텔을 예약했다. 어제 머문 숙소는 깨끗하고 침대도 편하고 좋았으나 밤 12시 넘도록 1층에서 노래를 틀고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방 까지 엄청 울려퍼져서 귀마개를 꼈어야만 했다. 그것만 아니면 좀 더 연장하고 싶었으나 남은 방이 없어서 결국 도보 2분 거리의 다른 숙소로 옮겼다. 숙소는 예전에 방콕에서 머물렀던 v호스텔 비슷하게 낡고 엔틱한 느낌이 들었고 아주 멋진 테라스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방에 짐 풀자마자 테라스에 나가 나무의자에 누워 마음껏 햇볕을 쬤다.
한참 광합성을 하다 낮 세 시쯤 되어서 맛세가 부탁한 바지를 찾으러 나갔다. 걔가 말해 준 숙소로 가서 여기 독일 남자애가 놓고 간 바지 있냐고 물으니 아~!하면서 바로 갖다줬다. 치앙마이 떠날 때 농담으로 니 옷 입고 온다 했는데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컸다. 포대자루인 줄 알았다. 맛세 바지 찾고 근처 편의점 벤치에 앉아 주스 하나를 쪽쪽 빨아마셨다. 이때 뭔가 손에 이것저것 들고있어서 빠뜨린 물건 없나 계속 확인했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커밍쑨.
바지 찾고 첫 날 묵었던 숙소에 로션을 두고 와서 재빠르게 다녀왔다. 근처에서 제시(거기서 키우는 개)와 마주쳐 같이 놀고싶었지만 혹시 아는 사람이 나타날까봐 포기했다. 그 숙소 근처는 웬만하면 더 이상 가고싶지가 않다.
그 날 나의 미션을 다 마치고 워킹스트리트로 돌아와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 치킨 라이스를 시켰다. 내가 방콕에서부터 먹고싶었던 치킨 라이스!!!!!그 흔해빠진 음식을 왜인지 지금까지 못 먹고 있었음. 음식을 주문하고 혼자 멍때리는데 가게 직원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태국어로 뭐라뭐라했다. 뭔 소린지 몰라서 몇 번이고 뭐??했더니 코리아?라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남자는 또 알 수 없는 태국어로 쏼라쏼라 대더니 수저와 포크를 직접 꺼내 내 앞에 세팅해줬다. 그리고 좀 이따 음식이 나와서 맛있게 쳐먹고 있는데 그 남자가 다시 와서 내 앞자리에 앉더니 내가 밥 먹는 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드럽게 부담스러워서 무시한 채 밥을 싹 비웠는데 그 놈이 날 보더니 갑자기 끈적이는 말투로 '유 아 쏘 러블리...'라고 지껄였다. 진짜 어이없어서 '뭔가 잘못됐다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라고 생각하며 계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놈이 영수증을 적어주는데 미친 50바트의 0을 하트로 그려서 주는 헛짓거리를 해댔다. 난 그놈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빨리 계산한 뒤 자리를 뜨려고 열심히 가방을 뒤져댔다. 근데 거기서 위기가 발생했다. 지갑이 없었다. 당황해서 가방을 계속 뒤적거리는데 그 놈이 날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난 신경 끄란 식으로 대답하며 계속 지갑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놈은 영수증에 내 얼굴 비슷한 걸 그려댔다. 아무래도 호스텔에 지갑을 두고온 것 같아 그놈에게 나 사실 지갑이 없다, 담보로 내 가방 두고 갈 테니 돈을 가지고 금방 오겠다, 했더니 그놈이 알겠다고 했다. 근데 뭔가 그 놈이 내 가방을 뒤져보는 거 아닌지 걱정됐고 문득 아침에 미용 면도칼을 내 힙색에 넣은 채 그대로 나온 일이 떠올라 수상해 보이는 그 물건을 얼른 꺼내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가게에서 나와 호스텔 쪽을 향해 한 20초 정도 걸었는데 그 순간 챠우와 마주쳤다. 깜짝 놀라서 몸은 좀 어떻냐 지금 어디서 머무냐 등등을 묻고 걔가 어디가냐길래 지금 밥 먹었는데 지갑을 두고와서 호스텔 간다했더니 자기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고 했으나 챠우가 500바트를 건냈고 이렇게 많이 필요없다고 50바트만 빌려달라, 나중에 갚겠다 했더니 그냥 가지라며 50바트를 내밀었다. 아픈애한테 돈까지 빌리고 너무 미안했다. 아무튼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식당에 돌아갔더니 그놈이 내 가방을 매고 있어 가방 내놓으라고 한 뒤 돈을 지불했다. 그 놈과는 다음날 길에서 한 번 더 마주쳤으나 내가 재빨리 눈을 피해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일단 호스텔로 돌아가 정신없이 지갑을 찾는데 그때서야 편의점에서 주스를 사 마신 게 떠올랐다. 근데 정신이 없어서 대체 내가 어디 편의점을 갔던 건지 기억이 안 났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 내가 맛세 바지를 찾은 뒤 벤치에서 사진을 찍어 걔한테 보낸 것이 생각났고 아이폰으로 그 사진 찍은 위치를 확인 해 얼른 달려갔다. 사실 달려가면서도 내가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여기가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일단 현금카드에서 빠져나간 돈이 없나 확인하며 뛰었다. 돈이 안 빠져나간 걸 확인한 뒤 헐레벌떡 편의점에 도착 해 벤치 밑을 두리번 거리는데 근처에서 어이어이!!하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뒤를 쳐다보니 편의점 앞에 있는 노점상 주인들이 내 지갑을 주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너무 깜짝 놀라서 헉!!!!!!하고 펄쩍 뛰며 그 사람들에게 연신 코쿤카 코쿤카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거기서 음식들을 좀 사 갔다. 아주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이 주워서 그 노점상에 갖다준 건지 그 사람들이 발견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아주 기적같은 상황이었다. 나도 살면서 지갑 많이 찾아다 줬는데 역시 인간은 착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하루종일 참 다사다난한 일을 겪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게스트 여자와 주인 아주머니가 저녁을 먹고있었다. 아주머니가 나보고 같이 먹자길래 그 사이에 껴서 음식을 나눠먹었다. 거기서 만난 리사라는 여성과 빠이 캐년 갔다가 나중에 돌아 온 로즈라는 여성 둘이 밥 먹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거기서 로즈의 남사친과 합류해 넷이서 칵테일을 마셨는데 뭔가 재미가 없었다. 리사가 지루해하며 먼저 간다길래 나도 다른 친구 만나야한다며 둘이 빠져나왔다. 리사와 얘기하며 걸어가는데 길에서 이잘을 또 마주쳤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이잘이 민소매 입은 나에게 안 춥냐 묻길래 추워! 했더니 나를 막 껴안았다. 그 와중에 이잘 옆에 있던 새로운 친구가 나보고 한국인들은 정말 아침마다 국밥을 먹냐며 이상한 질문을 했다. 난 아침밥 안 먹어서 모른다 했고 걘 엄청 신나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리사가 추워해서 얼른 이잘과 인사를 했다. 근데 그때 바로 앞에서 한국 친구와 전에 만났던 한국남자를 발견했고 또 길바닥 교통정체가 시작됐다. 급하게 이잘과 다시 인사하고 한국남자와 이따 만나기로 약속하며 거길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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