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17

2017. 2. 12. 02:53 from 싸돌

방콕에 와 있다.
입국할 때 부터 난생 처음 빈혈 헬게이트를 겪어 죽을 뻔하고 하루하루 개같음과 개좋음이 조울증 환자 마냥 확확 바뀌는 그런 생활중이다.
오늘은 드디어 지겨운 카오산을 떠나는 날. 급한대로 대충 잡아뒀던 숙소들도 하나같이 특색 없고 삭막해서 날 더 짲응나게 함.
그래도 마지막 날에 아주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슈퍼 큐티스트 노부부가 운영한다는 댓글을 보고 전 날 예약해서 방을 옮겼는데, 주인 할머니가 정말 귀엽고 친절한 분이셨다.
체크인 할 때 내 출입국신고서가 갑자기 사라져서 배낭을 한참 뒤졌더니 할머니는 잃어버리면 어떡하냐고 여권에 꼭 꼽아놓고다니라며 몇 번을 신신당부하셨고 내 이름 발음을 한 세 네번 물어보셨다.
직접 손으로 받아 적어 방을 체크인하는데 그 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었을 적 모습으로 보이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방은 목재로 지은 완전 오래 된 건물인데 아주 엔틱하고 멋졌다. 근데 밤에 불 꺼놓으니 장화홍련에 나오는 집 같아서 좀 무서웠음.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장소를 옮기려고 택시를 잡는데 미터기 안 켠다는 걸 몇 대 보내다가 나중엔 오토바이랑 몇 번 더 승강이를 했는데 이 과정이 너무 거지같고 짜증나서 걍 걸어가기로 했다. 오토바이 청년은 '너 거기 걸어서 못 갈걸?' 이라 말 했지만 나의 바가지를 향한(쓸데없이)격한 혐오감+스스로에게 아무런 득도 없는 오기로 '아니 나 걸어갈거임'하고 뚱뚱한 배낭을 맨 체 내 무덤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여행지에서 이것때문에 피 본 일이 한 두번이 아니건만 역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난 스스로 어느정도 융통성이 있는 인간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으나 이런 부분에선 너무 철밥통 같은 게 문제다. 그래도 계속 오냐오냐 해주면 이샛기들은 분명 더 큰 돈을 요구할 것이 뻔하고 어느쪽이던 내 자신이 불리해지는 건 같은 결과. 그럴 땐 머저리같은 소신이라도 지키는 게 차라리 맘 편하다.
암튼 볍신같이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약간 외진 동네로 겨우 들어왔는데 거기 있던 인부들이 땀 뻘뻘 흘리며 지 몸뚱이마냥 큰 배낭을 매고 가는 날 자꾸만 쳐다 봄.
방으로 들어온 뒤 편안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고 누워있다가 다음 행동 개시를 준비하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고 또 나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그 상태로 나가서 택시를 또 잡았는데 다행히 한 번에 미터로 가는 차를 타서 나의 빡침이 맥시멈을 찍고 차가운 타지 길바닥에서 혼절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후에 볼일을 보고 다시 택시를 탔는데 아주 친절하고 양심적인 기사를 만났다. 적당한 돈을 주고 잔돈을 남겨주고 싶었으나 1000밧 지폐 한 장과 동전 찌그래기들 밖에 남아있지 않아 결국 짤짤이를 털어 줄 수 밖에 없었다.
이 이후에도 친절한 택시기사를 한 번 더 만났으나 이자식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통에 내가 실제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꼼수가 아니라 진짜 착각한 것 같았고.. 알고있는 길 임에도 멍 때리느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탓도 존재하기 때문에 엄청 화가 나진 않았다.
역시 한 나라의 가장 드럽고 추한 모습을 보기 위해선 그 나라의 수도를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느 곳이던 수도, 특히 관광지는 정말 하나같이 개떡같고 지랄맞은 것 투성이다.
내일은 드디어 방콕을 떠나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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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개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