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돌

악몽의 빠이생활

개털 2018. 1. 28. 20:47

180124

빠이에 온 지 이틀 째 되던 날 룸메이트 인간들과 같이 아침을 먹고 호스텔로 돌아와 게으름을 피웠다. 낮에 써니와 윅터가 계속 바이크 타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으나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 거절했고 챠우도 싫다고 했다. 놈들은 우릴 계속해서 꼬셔댔고 우린 계속 거절했다.
점심 무렵 윅터와 방 앞에서 떠드는데 걔가 또 바이크 타기를 권유했다. 난 다시 거절했으나 걘 끈질기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나중엔 그냥 자기 뒤에 태워줄테니 동네 한 바퀴 돌고오자고 했다. 우린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하였고 윅터가 나 먼저 타라고 하길래 난 장난식으로 챠우 먼저 타고 안전하면 그 뒤에 타겠다고 말했다. 결국 챠우가 자기 먼저 다녀오겠다고 하였고 둘은 헬맷을 쓴 뒤 바이크 위에 탔다. 그렇게 숙소 앞에서 조심히 타라고 말한 뒤 손을 흔들고 난 숙소 정원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걔들이 떠나고 10초도 안 된 시점에 저 멀리서 엄청난 충돌음이 일어났다. 난 깜짝놀라 그 쪽을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없길래 안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불안해져 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현장에 도착했는데,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바이크 세 대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챠우가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윅터 품에 안겨있었다. 그 순간 정말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급하게 현장에 뛰어왔고 일단 챠우를 감싸안으며 정신을 차릴 수 있게 계속 이름을 물어봤다. 챠우는 아주 힘겹게 자기 이름을 반복했다. 지나가던 주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을 갖다주고 근처에 있던 현지인 아줌마가 지금 경찰과 구급차를 불렀고 곧 도착할 거라며 소리쳤다. 윅터는 그 아줌마를 향해 알았으니 그만하라고 소리 질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난 여지껏 여행하면서 이런 일을 겪은 적도 없고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상상도 해 본적이 없어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와중에 온 몸에 피가 묻은 챠우를 보니 눈물이 나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챠우가 정신을 되찾았고, 다른 친구들과 그 애를 바닥에 앉혀 물을 주고 진정시켰다. 그런데 그때 챠우가 자기 지금 느낌이 이상하다 말하더니 곧이어 '내 이 어디있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입에 피를 흘리던 챠우가 계속 거울을 보고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계속 자기 이가 사라졌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순간 구급차와 경찰이 도착했고, 경찰은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친구와 난 챠우에게 빨리 병원에 가자고 말했으나 챠우가 계속 구급차 타는 것을 거부했다. 그렇게 몇 번을 설득하고 윅터와 챠우를 구급차에 태운 뒤 나와 룸메이트가 함께 동승했다. 윅터는 구급차 안에서 정신이 나간 채 헛소리를 반복했고 난 조용히 챠우 다리에 손을 얹은 채 아무말도 없이 달리는 구급차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로 어제 챠우와 걸어가며 감탄하던 풍경들이 그 순간은 너무 다르게 보였다. 병원까지 달리는 10분이 한 시간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 챠우는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같이 사고 난 독일인 두 명도 곧 병원에 도착했다. 윅터와 그 사람들은 가벼운 찰과상만 입어 스스로 걸어다녔다. 뭘 어떻게 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대기실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는데 그때 써니가 병원에 도착했다. 심각해하는 나에게 써니는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정말 실소조차 안나왔다. 대기실에 앉은 채 얘를 여기 왜 데려왔을까, 왜 바이크 탄다고 할 때 한 번 더 말리지 않았을까 후회했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 생각하자면 정말 끝도 없을 것이고 아주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한 네 시간 넘게 보냈던 것 같다.
챠우는 다행히 곧 스스로 걷고 말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고로 이가 세 개나 부러졌다. 얼굴과 손도 많이 다쳐 붕대를 감았다. 정말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심란한 마음에 밤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물론 가장 괴로운 사람은 사고 당사자겠지만, 그 날 나도 밤 늦게까지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