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치앙마이 온 지 일주일 째. 요 며칠간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 숙소에서 쭉 머물고 있는데 여긴 이상한 사람이 정말 많다. 첫 날 방콕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해 친구를 만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까지 갔는데 카운터엔 아무도 없고 로비에 어떤 남자 한 명만 누워있었다.
남자에게 넌 누구냐. 호스텔 스태프냐. 나 어제 여기 방 예약했다. 키 내놔라. 하고 말했더니 그 남자가 자기는 직원이 아닌 일개 투숙객이며 스탭은 퇴근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지가 전화해보겠다고 했다. 남자가 호스텔 직원에게 전화를 하면서 혹시 카운터에 바우처가 있나 뒤적거렸지만 직원은 전화도 안 받고 바우처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 해결법을 찾고있는데 드디어 직원과 통화가 됐고 내가 여기 예약을 했는데 어쩌고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근데 직원은 내 이름으로 오늘 예약한 사람이 없으며 니가 예약 잘 했는지 한 번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폰으로 내 예약확인서를 봤는데 이런 시부럴? 멍청하게 숙소 예약을 한 주 뒤로 해 놓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예약을 다시 하고 일단 하룻밤 잔 뒤 다음날 직원이 오면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글로 쓰면 상당히 간단하게 일이 해결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과정은 아주 길고 지랄같았다. 그리고 그 지랄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 준 눈이 맑은 남미 청년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웃긴 게 걘 자기도 투숙객이면서 무슨 게임 npc처럼 늘 로비 구석탱이에서 과자를 먹으며 나와 같은 우매한 인간들을 돕고 다녔다. 길에서 볼 때마다 인사했으나 며칠 후 체크아웃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와 바로 짐 풀고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는데, 여기서 정말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진심 최근 6개월 간 내가 겪은 일 중 제일 웃긴 사건이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다 자고 있고 난 핸드폰을 보며 내일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새벽 2시 쯤 덩치 큰 여자가 들어 와 침대에 그대로 뻗어 잠 들었다. 꽐라됐나보다 하고 별 대수롭지않게 여긴 뒤 다시 폰 보며 빈둥대는데, 그때 내 밑에 사람이 코를 골기 시작했고 거기에 반응하듯 내 옆의 위의 사람도 코를 골았다. 난 귀마개도 갖고 있고 아주 심하지만 골으면 약간의 소음은 참을 수 있기 때문에 또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그때 내 고막을 뭉갤 듯 졸라 미친듯이 겁나 큰 탱크소리가 들려왔고 곧장 그게 늦게 들어온 여자의 코 고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그렇게 큰 코골이는 내 생에 두 번째였다. 너무 커서 짜증나는데 동시에 그 인간에게 생명의 지장이 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여자가 한참 탱크소리를 내고 있는 순간 갑자기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경쟁하듯 코를 더 크게 골아댔고 진짜 ㅋㅋㅋ무슨 도레미파솔라시도!해서 점점 음 올리는 게임 하는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럽게 짜증나는데 동시에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혼자 속으로 웃다가 앞 쪽을 봤는데 내 일행이 얼굴에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지 혼자 웃음을 참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본 나는 갑자기 빵 터져서 혼자 끆끅댔다. 와중에도 코 골기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고 정말 누구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만큼 미친듯이 시끄러웠다. 일행과 나는 서로 메세지를 보내며 너무 웃기다고 저 사람들 뭐냐고 낄낄대고 있는데 그때 방 안의 누군가가 "스고이..."하며 조용히 뱉은 한 마디에 난 겁나 빵 터지고 웃음 참느라 눈물이 나기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몸부림치다 내 물건이 1층 침대와 바닥으로 다 떨어지면서 소음을 일으켰고 방 안은 더욱 카오스가 되었다.
난 거의 울기 직전이 되서 방 밖으로 뛰쳐나와 로비에서 미친년처럼 풐ㅋ캐키켘ㅋㅋ케케켘ㅋㅋ낅ㅋㅋ ㅋㅋ하고 웃고 일행도 곧 뒤 따라 나와서 나랑 엄청 웃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세 시 반이었다. 아 사실 전에 숙소에서도 엄청 크게 헬로우???!!하고 전화받던 여자 때문에 한 번 터진 적이 있었지만 코골이 사건은 그것의 10배는 더 강력하고 짜릿한 경험이었고 그 날부터 스고이는 우리 유행어가 되었다.
새벽에 웃느라 너무 늦게 잠 들어서 다음날 완전 늦잠을 자고있는데 방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깼다. 침대에 무당집 마냥 온갖 빨래를 걸어놓고 짐을 여기저기 다 풀어해쳐놓은 한국인 아줌마가 내 밑에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코 엄청 골던 덩치 큰 미국 여자와 떠들도 있었다. 처음엔 자기들끼리 너 코 고는 소리 대박이더라 이런 얘기하고(자기가 코 골은 생각은 못 하고) 나중엔 한국인 아줌마가 이 방 너무 비싸고 구리다 난 치앙마이 엄청 자주 오고 더 좋은 방을 안다 이러면서 불평불만을 시끄럽게 늘어놨다. 그러더니 밑에 여자도 어눌한 한국말로 그 숙소 자기도 알려달라했다. 곧 미국여자는 짐 싸고 떠나고 한국아줌마도 계속 씨부렁대며 짐을 챙겨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쪽을 향해 자요?자요?자요?자요?하며 말을 걸었는데 피곤하고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아 자는 척 무시했다. 그렇게 10분 지났나 아줌마는 내 침대 앞으로 와서 한국분!!한국분!!!하며 날 불러댔고 난 겁나 인상을 쓰며 네?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대뜸 나에게 이 앞에 있는 어쩌고 호스텔이 있는데 거긴 가격이 얼만데 시설이 더 좋고 그 가격은 곧 변동이 있을 건데 부킹닷컴에서 예약할 수 있고 나는 지금 그곳을 갈 거니 그렇게 알아라. 하고 말 했다.
?정말 뭐 어쩌란건지 싶었고 그 아줌마가 다른 호스텔에서 자건 길바닥에서 자건 그걸 내가 왜 알아야되나 한 3초 정도 고민하다가 '나갈 때 문 좀 닫으세요' 라고 대답했더니 바로 짐을 들고 나가버렸다. 진짜 어이없었다. 말투도 무슨 추천이나 권유가 아닌 본인이 여행 많이 다녀봤다는 자랑 및 허세의 뉘앙스였다. 빨리 체크아웃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날 밤 스고이를 외쳤던 여자는 재일교포였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되게 이곳저곳 정처없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단 걸 알자 흥미를 보였고 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나 남자배우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난 드라마를 안 봐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 여자와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그 날 한국 아줌마가 나가고 빈 자리에 젊은 일본인 남자가 새로 들어왔다. 태국에 한국인과 중국인이 판 치는 것에 비해 일본인은 보기가 힘들었는데 한 방에 두 명이나 있으니 신기했다. 남자도 껴서 셋이 한참 떠들다 여자와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여자와 맥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뭔가 대화를 나눌 수록 말이 잘 안 통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대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그보다는 서로 사고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안 맞았다. 치앙마이 와서 거의 처음 사귄 사람이었는데 끝이 안 좋았다. 여자는 어제 체크아웃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여자는 옆 방으로 옮긴 거 였다. 왠지 나를 포함한 우리방 사람들을 피하는 것 같은데(나도 그랬지만) 정말 이상하다.
비둘기를 지배하는 자.
중국인들은 왜 비둘기를 좋아할까.